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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뢰 무너뜨리는 공공 문장 오류(소설가 성석제)

우리글 0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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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성석제

 

도로에 내걸린 안내문은 정확하고 분명해야 하는데 맞춤법조차 틀려 비웃음 유발
상수도 정수장의 미사여구도 공급자 중심의 생색내기…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써야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서울의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사람도 반드시 안전띠를 매야 한다. 올해 4월 1일부터 전국 120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뒷좌석 탑승자가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탑승자가 아니라 운전자에게 과태료 3만원이 부과된다. 안전띠를 매지 않을 경우 시속 48km에서 사고가 나도 뒷좌석 탑승자가 앞좌석 운전자를 덮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의 충격은 7층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안전띠를 매면 충격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담은 문장이 어느 날 내 눈에 포착됐다.

'뒷자석에서도 안전띠를 매세요.'

국도에서 막 고속도로로 진입하다 마주친 전광판에 나타난 그 문구 때문에 나는 소리까지 내며 웃다가 사고를 낼 뻔했다. 그러니 절대 웃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웃음의 진원지는 '뒷자석'이라는 단어였다. 뒷자석이 있으면 앞자석도 있을 것인데 극(極)이 다른 자석끼리는 서로 붙으려는 성질이 있으니 어떤 차의 앞자석과 앞에 달리고 있던 차의 뒷자석이 본성에 따라 서로 다가가려고 할 때 어떻게 말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웃느라 내 차의 진행속도가 느려졌고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옆 차선으로 들어섰다가 신호도 하지 않고 갑자기 차선을 바꾸며 앞으로 들어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경적을 울리자 옆 차선에서 들어온 차도 신경질적으로 마주 경적을 울려댔다. 고속도로 위에서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느냐는 듯이.

고속도로의 문자 전광판에 교통정보와 함께 나타나는 그 문구에서 '뒷자석'은 물론 '뒷좌석'을 잘못 쓴 것이다. '자석'과 '좌석'이 다르다는 것은 웬만한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다. 고속도로 전광판에 정보와 문장을 올리는 주체는 한국도로공사교통안전공단, 경찰청 같은 공공기관일 것이다. 거기에는 '뒷좌석 탑승자 안전띠 의무 부착'에 관한 정보를 전광판에 올려야겠다고 입안(立案)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뜻을 담은 문장을 쓴 사람, 입력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어른'이 관여했으면서도 '뒷자석'이 '뒷좌석'을 대신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 뒤 몇 달 동안 같은 문장이 전광판에서 명멸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우습지도 않았다.

문제는 그 전광판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차의 운전자들이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하다'는 건 나처럼 문장에 예민한 사람이 순식간에 단어에서 파생된 상상의 맥락에 빠져들어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실소(失笑)하거나 비웃거나 어처구니없어하거나 하는 것 등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전광판에 나타나는 다른 문장으로 표현된 정보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되고 문장을 작성한 주체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된다.

내 이야기의 요점은 이렇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처럼 한순간의 주의 분산이 큰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는 곳에 쓰이는 문장은 정확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로에 걸릴 공공의 문장이라면, 맞춤법과 문장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좋으니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보고 확인하고 정해야 한다. 사소한 오류가 근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강에서 가까운 길을 산책하다가 상수도 정수장에 걸린 현수막에 '건강하고 맛있는 수돗물'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보통 '건강하다'는 건 인체를 비롯한 생명체에 붙이는 형용사다. 물과 공기, 바람, 바위 같은 무생물을 두고 '건강하다'고 하는 건 이상하다. '맛있는 물'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맛이 있고 없는 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수돗물을 마시는 시민이지 공급하는 쪽이 아니다. 수돗물은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포장하거나 생산·공급하는 주체가 고생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색을 낼 대상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잘 정수해서 '안전하다' '깨끗하다'는 말로도 될 것을 뭔가 더 좋다고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문장인 것 같은데 방향이 틀렸다. 공공의 문장은 정확해야 할 뿐 아니라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그만 빗물에 파인 웅덩이에 발이 빠지면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주변에는 주의를 하라는 표지도, 책임을 물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영국의 속담이 떠올랐다. "별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은 늘 발밑의 웅덩이를 조심해야 한다."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2011.8.31.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31/20110831025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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