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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글 산책

우리글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도록 어문 규범, 어문 정책, 우리 말글의 현주소 등에 관한 글을 모았습니다.

생각을 달리 하면 왜 안 되나?

옛밀 0 1728

요즘은 자주 동요를 흥얼거린다. 지긋이 두 눈을 감고 동요를 흥얼거리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어린 시절의 바닷가 고향 마을이다. 또래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가 보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재밌다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곤 했던 철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도 몰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곤 한다. 나이 탓일까?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스스르 팔을 베고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누군가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섬집 아기’를 듣는다. 문득 아기 생각에 굴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 하고 모랫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생각하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런데 예전에 듣던 ‘섬집 아기’ 가사가 아니다. ‘스르르 팔을 베고’라는 구절이 ‘팔 베고 스르르르’로 바뀌어 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에 대한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팔을 베는 것이 먼저이고 스스르 잠이 드는 것은 나중이다’는 의견을 받아들여서 고쳤다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동요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를 동작의 순서대로 ‘~ 따다 입에 물고요’로 고치지 않은 것이 그저 다행이다.

문장의 수사법의 하나로서 ‘도치법’이라는 것이 있다. 다음(www.daum.net) 국어 사전에서 ‘도치법’을 찾아보니 “하나의 문장 안에서 낱말과 구의 정상적인 순서가 뒤바뀌는 것으로, 문장 가운데 특별히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감정이 격화된 상태를 보이려는 경우에 주로 쓰이는 수사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까, 섬집 아기’ 동요 원작은 아기가 ‘스르르’ 잠이 드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르르 팔을 베고’처럼 문장 안에서 도치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도치법은 위의 설명처럼 한 문장 안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장의 순서를 바꿔서 쓰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비된 사람으로서 어찌 기쁘지 아니할쏘냐? 자식이 그리도 바라던 직장에 들어갔으니!”

‘생각을 달리 한다’라는 말을 ‘생각이 다르다’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을 달리 한다’는 말은 ‘달리 생각한다’를 도치시킨 표현이다. 즉, 앞의 두 예문은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생각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듯이, 생각을 같이 할 수도 있고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때 ‘달리’는 ‘다르게’라는 뜻의 부사이고, ‘달리하다’는 ‘다르게 가지다’라는 뜻의 타동사이다.

‘그 문제는 달리 생각해 보자.’ -> ‘그 문제는 생각을 달리 해 보자.’

‘(이제까지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있고서부터는 그 사람에 대하여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 ‘~ 그 사람에 대하여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달리’ 하거나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만이 아니다. ‘뜻’을 ‘같이’ 또는 ‘달리’ 하는 경우도 있고, ‘행동’을 ‘같이’ 또는 ‘달리’ 하는 경우도 있고, ‘생사’를 ‘같이’ 또는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박자를 맞춘다’는 말은 이와 같이 ‘생각이나 행동을 같이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관용어이다.

‘오늘밤 나랑 행동을 같이 할 사람은 손을 드시오.' 무언가 비장한 느낌이 드는 말이다. 이것을 ‘오늘밤 나랑 행동이 같은 사람은 손을 드시오’라고 바꾸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항해 중에 폭풍우를 만난 어선의 선장이 선원들에게 ‘우리는 지금 생사(生死)를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라고 말했다면 선원들에게 뜻이 제대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가 있게 되었다면, 안타깝게도 ‘그 폭풍우로 선원들은 생사를 달리 했다.’라는 말을 쓸 수밖에. ‘유명을 달리 했다’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동요 ‘섬집 아기’의 노랫말 중에서 어색한 부분은 ‘스르르’와 ‘팔을 베고’라는 말의 순서가 아니라 ‘팔을 베고’라는 표현이 아닐까? 젖먹이 아기가 엄마 팔을 베고 스스르 잠이 든다면 몰라도 설마 자기의 팔을 베고 잠잘 줄을 알랴? 곡조에 맞추기 위해서 ‘스르르’를 ‘스스르르’로 고친 부분도 어색하다. ‘스르르르’라고 말해서 안 될 것이야 없겠지만, 이런 종류의 의성어 또는 의태어는 세 글자로 쓰는 것이 귀에 익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스르르, 주르르, 쪼르르, 우르르, 까르르’ 등의 말이 떠오른다. 아무려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지 ‘까르르르’ 웃을까?

이왕 동요 얘기가 나왔으니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 관계자들에게 하는 부탁이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이마에 ‘맺힌 땀’이 아니라 ‘흐른 땀’이라면 차제에 ‘흐르는 땀’으로 고쳐 주기 바란다.(201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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