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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글 산책

우리글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도록 어문 규범, 어문 정책, 우리 말글의 현주소 등에 관한 글을 모았습니다.

'까치설'과 '아치설'

옛밀 0 2408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어린 시절 추억이 물씬 묻어 있는 동요 ‘반달’. 우리나라 첫 동요집인 윤극영 선생의 ‘반달’ 원본이 최근에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동요집에는 ‘반달’ 외에도 ‘설날’, ‘고드름’, 꼬부랑 할머니‘ 등 우리가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 10여 편이 실려 있다고 한다. 원본에는 이제까지 우리가 배우고 부른 것과는 달리 ‘푸른 하늘 은하수’가 아닌 ‘푸른 하늘 은하물’로 적혀 있다고 한다(조선일보 2012. 5. 5.).

  ‘반달’의 가사가 ‘은하물’이었다는 것은 이번에 원본이 발견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윤극영 선생의 생전에 이미 ‘은하수’ 가사로 불렸으니 음악 교과서를 펴낸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고쳤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선생께서 첫 가사를 쓰실 때는 ‘은하물’이었는데 나중에 이를 ‘은하수’로 고쳐서 내놓으셨을 것 같다. 사람들이 혹시 ‘은하물’보다는 ‘은하수’라고 말하고 있어서 이를 고려했던 것일까?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선생의 동요 ‘설날’도 언제나 정겹다. 지금도 설날이 오면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어김없이 이 노래를 들려 준다. 세월이 흘러서, 졸업식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가는 지금은 더 이상 불리지 않지만, ‘설날’은 ‘설’이 남아 있는 한 불릴 것이다. ‘설날’ 노래는 서양 풍속과 비교하여 말하자면 ‘크리스마스 캐롤’과 같다.

  그런데 ‘까치 까치 설날’은 어떤 ‘설날’일까? 다음은 인터넷의 ‘오픈 국어 사전’에 실린 내용이다.

(어원)까치설 : 작은 설.

  까치설을 조선 시대에는 ‘아찬설’이라고 했다. 이때 ‘아찬설’이란 ‘작은’이란 뜻이다. 그래서 ‘아찬아들’이라고 하면 작은 아들, 즉 조카를 의미했다. 그러던 것이 ‘아찬’이 차츰 ‘작은’이란 뜻을 잃어버림에 따라 ‘아찬’이 ‘아치’로 변하여 ‘아치설’이 되었다. 이 ‘아치’가 ‘까치’와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엉뚱하게 ‘까치설’로 바뀐 것이다.

  ‘아치’가 ‘까치’와 소리가 비슷해서 ‘아찬설’이 ‘까치설’로 바뀌었다니 설명된 것처럼 엉뚱하기 짝이 없다. 맨처음에 누가 그런 착각을 해서 동요에까지 잘못 사용되었을까? 가사를 지으신 윤극영 선생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 알고 사용하고 있었는데 선생께서는 이것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다만 이 말을 갖다 쓰셨던 것일까?

  ‘아찬’이 ‘작은’이라는 뜻이라면 ‘작다’에 해당하는 ‘아찬’의 기본형은 ‘아차다’일 것 같다. ‘작다’라는 말이 나중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그 시절에는 ‘아차다’와 ‘작다’라는 말이 같이 쓰였을 것이다. ‘알차다, 박차다, 힘차다’ 따위에서 보듯이 우리말에는 ‘차다’라는 말이 들어가는 말이 많은데, ‘아차다’라는 말이 쓰이지 않고 사라졌다니 무척 아쉽다. 그런데, 그 시절에 ‘아차다’, ‘작다’라는 말이 같은 뜻으로 쓰일 정도로 우리말의 어휘가 풍부했을까?

  오래 전에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가 우리말의 다양성에 관한 자부심을 말하는 것을 듣고 빙그레 웃었던 생각이 난다. 그 진행자의 말은 ‘뉘리끼리하다’는 말은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만의 말이라는 것이었다. 진행자가 ‘노리끼리하다(아주 밝거나 진하지 않게 노랗다)’를 ‘뉘리끼리하다’로 말한 것까지는 좋은데 영어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사실은 우리말은 영어나 한자어에 비해서 어휘가 부족한 편이다. 예를 들면, 한자로 ‘빨갛다’는 여러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지만 우리말로는 ‘붉을 단(丹), 붉을 적(赤), 붉을 주(朱), 붉을 혁(赫), 붉을 홍(紅),’으로 모두 ‘붉은 것’으로 표현된다. ‘푸를 록, 푸를 벽, 푸를 청, 푸를 초’도 우리말로는 ‘푸르다’라는 하나로 표현된다. 영어의 어휘는 따로 예를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자. 윤극영 선생께서 1988년도에 작고하셨으니까 우리랑 오랜 세월을 함께 살다 가셨다. 선생께서 ‘아치설’을 ‘까치설’로 잘못 아셨을 만한 이유가 있을까? 아니, 그 시절에, 그 시절이라면 바로 엊그제인데, 누가 섣달 그믐날을 일컬어 ‘아치설’ 또는 ‘까치설’이라고 했다는 말일까? 다들 잊고 있던 말을 선생께서는 잊지 않으셨던 것일까?

  나는 어려서 ‘까치설’이라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지만,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시절 어린이들은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설날에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려면 섣달 그믐날에 까치가 와서 울어 줘야 한다. 내일은 반가운 손님이 오는 ‘여러분의 설날’이라고. 산과 들에 먹을 것이 떨어진 그맘때는 다행히 까치들이 마을에 자주 나타나는 때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시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서였다. 즉, 섣달 그믐날인 어저께는 까치들이 울어 대는 ‘까치의 설’이었다. 어저께 까치가 울어 준 덕분에 우리집에 반가운 손님이 오셨으니 오늘은 즐거운 '우리 우리 설날'이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이렇게 이해하는데는 굳이 물어 볼 것도,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은 시절이었다. 선생은 어쩌면 그 시절의 이런 정서를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라는 시로 표현하셨을 법하다. 선생의 '설날' 노래 말고서는 '까치설'이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있는가? 다들 잊고 사는 ‘아치설’이라는 말을 다른이들보다 지식이 많은 선생께서 살려 쓰신 것이라면, 아름답고 정겨운 그 노래가 그 뜻을 잘 모르는 채 불리는 것을 보고서도 설마 모르는 체하셨을까?

  지난해 8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물론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이지만.

  1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자리한 노로돔 초등학교 교정. 귀에 익은 한국의 졸업식 노랫가락이 프놈펜에 울려 퍼졌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10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20대의 디지털 피아노 소리에 맞춰 한국어로 능숙하게 노래를 불렀다. 이날은 캄보디아에서 최초로 초등학교 졸업식이 열린 날이다.

  기사에 따르면, 2003년부터 동남아시아에 학교 무상건립과 디지털 피아노 기증 등 교육지원 사업과 함께 우리의 노래를 보급해온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의 노력이 캄보디아에서 얻은 결실이라고 한다. 그 양반에 관해 아름답지 못한 보도를 본 기억이 있는데, 좋은 일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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